저는 요리와는 일절 관련이 없는 전공을 공부했습니다. 미술대학을 나와 디자인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디자인회사와 사업기획서를 작성하는 회사를 다녔습니다.
회사에 환멸을 느끼고, 사업을 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구제 옷장사를 하다가, 코로나 때 어머니 전집 배달을 도와드리다가 지금까지 전집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머니 장사를 도와드리면서, 너무 요리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전무하다고 느껴 다녔던 조리기능사 취득학원(아카데미)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조리기능사 자격증, 득이냐 실이냐
사장님들 커뮤니티에 조리기능사를 따고 창업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댓글에는 무조건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업종에 가서 배우는 게 더 낫다.라는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조리기능사 취득을 위해 학원은 과연 다니는 게 좋을까요?
일단, 조리기능사 자격증이 좋냐, 나쁘냐를 저에게 물어본다면 당연히 좋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중요도를 떠나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굉장히 값진 일입니다. 당장 매장에 적용할 수 없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몸속에 체득시켜 놓으면 언젠가는 꼭 필요한 순간이 오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저의 경우 총 3가지 조리기능사과정을 공부하고 2개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양식, 중식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식은 필기만 붙은 상태로 시험은 한 번 낙방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도전할 계획입니다.)
처음 요리에 대한 기술, 칼 잡는 법이나 조리기구를 활용하는 법도 모르고 양식조리기능사 과정을 신청했습니다.
사실 조리학원에 가면 칼 다루는 법부터 가르쳐 줄 줄 알았는데, 시간별로 시험에 나오는 메뉴를 바로바로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는 실전형 수업이어서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첫날 어리바리를 제대로 타고, 스스로 큰 창피감을 느꼈던 터라, 다음날 수업을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내일 할 수업 과제를 유튜브를 통해 미리 예습하고, 재료는 바로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초적인 칼연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여러 유튜브 영상을 보며 채썰기, 오믈렛팬 다루기 등 다양한 칼질과 조리도구를 연습하며 수업 진도를 따라잡았습니다.
초보인 저에게 조리기능사 수업 과정은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눈대중으로 대충 하던 우리 가게와는 전혀 다르게 메뉴별로 식재료와 소스의 정확한 계량, 넣는 순서까지 일련의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그때 배웠던 것들을 토대로 저희 가게의 모든 메뉴들의 레시피를 다시 되돌아보았고, 하나씩 레시피를 정립했습니다.
그때 잡았던 레시피들은 약간은 변했지만 가게의 하나의 레시피가 되어 지금까지도 손님들께 제공되고 있습니다.
조리기능사 학원을 다니면서, 가게를 하나씩 정리해 나간 것만으로, 저에겐 득이었습니다.
학원에서 배우는 레시피는 맛있을까?
조리기능사 실습과정이 끝나고 시식을 해보면 그다지 맛이 있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좋은 식재료가 아닐뿐더러 간을 따로 맞추지 않다 보니 당연히 맛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중식조리기능사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다음날 수업 과제인 탕수육을 배우기 위해 이것저것 유튜브를 보다가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연복 셰프가 탕수육을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탕수육을 만드는데 이게 웬걸, 중식조리기능사의 레시피와 95% 이상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이연복 셰프의 여러 가지 스킬과 디테일이 맛을 극대화시켰겠지만, 조리 과정에서의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다른 중식 요리, 일식요리의 레시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리기능사에 나온 레시피는, 바로 수학의 정석처럼 모든 분야의 요리의 기본 공식이었던 것입니다.
조리기능사 시험을 볼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료를 다듬고 넣는 순서,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식재료 교차오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청결하고 위생적이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레시피와 지켜야 할 기본 규칙을 가르쳐주는 과정이었습니다.
조리기능사에서 배운 레시피로 창업을 한다? 무모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딱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기본기와 창업하고자 하는 분야의 규칙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일식전문점을 하던 사장님은 중식조리기능 학원을 다니시면 충분히 중식을 접목시킨 가게를 창업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능사 수업은 조리 중 레시피와 관련된 일부분이지 사업 전체가 아니므로, 창업 시 관련된 다른 부분도 더욱더 열심히 준비하셔야 합니다.
내가 조리기능사를 배우며 얻은 것
저는 조리기능사 공부를 하며 자격증도 얻었지만 그 외에도 정말 많은 걸 얻었습니다.
먼저 조리도구와 재료들을 다루는데 익숙해졌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레인지에 가스총으로 키는 것조차 겁내했고, 감자채를 썰때 감자튀김 썰듯 두껍게 썰었던 제가 제한시간이 있는 시험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느긋하게 취미로 했던 요리와 달리 시간을 엄수해야 되는 기능사 시험의 특성상, 전문 요리 주방에서의 치열함은 아니지만 다급함과 그 속에서의 차분함을 유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저희 가게의 최고 매출은 일 350 만원입니다. 최대 매출을 올리기까지 다른 주방에서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조리기능사 시험에서의 다급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어 매출을 올리는 기반이 되어줬습니다.
또 가게에서 사용하는 반죽에서 미묘한 잡내를 잡는데, 일식조리기능사에서 배운 여러 가지 방법들이 도움이 되어 지금은 반죽을 사용하는 동그랑땡, 고추전 등 대부분의 전이 호불호가 적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 배달을 나갈 때 소면을 말아 나가는 방식도, 일식에서 배운 메밀 면 잡는 법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중식의 다양한 조리 방법과 양식의 소스 등 앞으로 요식업을 계속해가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수집했습니다.
이 밖에도 직접 경험해 보니 가게에 적용할 만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물론 조리기능사 수업과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유튜브나 책 등에 많은 자료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자료가 많다고 하여 가게에 적용하는 공부를 하는 실천은 하기 어렵습니다. 좋든 싫든 조리사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신청하여, 한 번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은 하나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창업하고자 하는 분야가 어떤 것이든, 배움에 있어서 필요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격증이 목적이 아닌, 배움과 가게의 발전을 위해 실천하는 계기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창업 전, 창업 이후에도 학원을 다니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물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도 경험입니다. 더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의외의 성과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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